지도에 없는 그 마을

선교하는 삶
김범수 <치과의사>
입력일자: 2012-12-20 (목)
LA 출발 서른 시간 만에 나이로비에서 비행기를 내린다. 50파운드 짐이 열두개. LA 공항에서 체크인할 때도 쉽지 않던 가방들이라 까다로운 나이로비 공항 검색대를 거치는 일이 염려되었으나 웬일인지 열어보지도 않고 무사통과다.

현지 선교사의 트럭에 일부 짐을 맡기고 일행은 다시 경비행장으로 갔다. 윌슨 에어포트. 선교지에서 경비행기 운송사역을 하는 국제 선교단체 MAF 소속의 베테런 파일럿 선교사가 우리를 맞는다. 그는 조종석에 앉기 전, 우리를 위해 기도했다. 이번 단기 팀은 현재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치과의사 부부, 나와 함께 LA에서 떠난 건축 전문팀 일행, 그리고 아프리카 마사이 부족 선교를 위해 LA 교회에서 파송된 한인 선교사 등이 합류했다.

우기를 맞아 케냐 초원은 푸르렀다. 녹지에는 초목에 물이 올랐다. 경비행기 창 아래로 보이던 도시의 건물들이 점점 사라지더니 에티오피아 국경이 가까워지면서는 땅이 황폐해진다. 변방지역, 모얄레. 주민들 90% 이상이 하루 다섯 번씩 알라신께 기도를 올리는 회교권이다. 이제는 케냐 시민으로 귀화한 한인 선교사가 이곳에 들어온 지 10년. 이 땅에 크리스천 고등학교를 세우고 회교권 가정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친다.

우리는 이튿날 이곳에서 다시 서너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마을로 이동했다.

‘솔롤로’. 지도상에서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오지이다. 물이 없고 전기가 없는 마을. 밤이 깊어 우리는 일단 숙소를 찾았다. 가톨릭교회가 오래 전에 세운 게스트하우스 건물인데 낡아빠진 바라크 구조에 방이 세 칸뿐이다. 지친 몸을 눕히려고 들어가니 잇새가 맞지 않는 벽 틈마다 박쥐들이 찍찍거린다. 눈이 마주칠까 얼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환자들은 아침부터 모여들었다.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 사람들도 멀리서부터 하루 종일을 걸어 도착했다. 대부분 평생 의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치아를 빼야만 할 때 마음이 아팠다. 어린 아이들도 힘든 치료를 잘 참는다. 검은 띠로 눈을 가리고 어금니를 뺄 때 소년은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의사나 약이 없이 살아온 이들이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잘 참는 것이다.

밤이면 별빛 아래 둘러앉아 우리는 찬양을 하고 각자 받은 은혜를 나누었다. 함께 간 장로 부부는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선교여행을 택했고 이번에 치과 사역을 도운 자매는 일생 가장 뜻깊은 생일을 선교지에서 맞았다. 몽골 치과 선교사 부부 역시 이번 여행으로 다른 사역지를 돌아보는 비전 트립을 감행한 셈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 처음 보는 메뉴다.“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염소 간입니다.” 방금 전 마당에 걸어다니던 마른 염소가 떠올라 손이 가질 않지만 후의에 감사하는 태도로 한 점을 집었다. 작년에 왔을 때는 부족 추장이 특별히 내준 닭요리를 먹었다. 샛노란 기름이 둥둥 뜬 국물 안에 닭 벼슬이 보였다.

거의 400명 가까운 환자를 치료한 뒤, 우리 팀은 하이에나와 개코 원숭이가 돌아다니는 길을 되짚어 모얄레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다시 LA로 떠나는 날. 검은 얼굴에 눈이 크고 잘 웃는 현지 아이들이 다가와 팔을 내민다. 악수도 하고 포옹도 나눴다.

건강하게 잘 지내라. 내년에 또 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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