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 사랑스러움은 영적 전쟁에서의 놀라운 힘입니다.

by 박원옥 posted Dec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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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는 여러 가지의 단계와 체험들이 있습니다.
기초적인 기도 중에 능력기도, 은사 적인 기도가 있는데
이것은 기도자의 영성이 별로 발전되어 있지 않아서
주님께서 그의 영혼과 교통하시기가 어려우므로
그의 육체에 은사를 부어주시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러한 은사적인 기도는
영혼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성도들이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좀 더 자신에게로 이끄시도록
기도의 맛을 보여주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은사기도에는
환상이나 음성,
일종의 황홀경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기도의 초보자들은 여기에 빠지기 쉬우며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한 후에는
우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본다고 해도
그것은 영혼의 성숙에는
그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기도의 능력들을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쪽집게시네요.
역시 신령하시군요.
한 수 좀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나 영이 조금 자라면
더 이상 신기한 장난감들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자신을 구하며
그분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기 원할 뿐입니다.
누가 높으냐 깊으냐
누가 무엇을 체험했느냐
이런 것에 별로 흥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기도의 세계에 조금 들어가서
영적 전쟁을 알게 되고
그 싸움의 현장을 보게 되고
여러 악한 영의 움직임들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쉽게 긴장하고
이 전투기도에 몰두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하나의 과정이기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빨리 이 은사적 기도에서
발전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 영적 현상과 느낌에 사로잡혀
마귀와 싸우는 데에 몰두하다 보면
거기에는 어떤 승리감과 자유함이 따라오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근본인 사랑과 누림, 안식, 여유, 따뜻함..
이러한 것들을 상실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는 바로 이 전투 후의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위한 과정이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세계가 열리고
전투에 몰두하여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는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성경에
직접 하신 말씀을 잘 믿지 않고
기분이나 느낌,
무당 비슷한 사람들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이나
마음이 혼돈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다가 보이는
뱀이나 호랑이의 형상,
용이나 귀신의 모습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전체를 사탄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계속 주님과 교통하지 않는 한
어디에나 귀신, 마귀가 있으며
그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분노, 미움, 욕심, 죄, 각종 악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악한 영들이 활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성장에 필요한 만큼의 고난과 훈련을
주님께서 허용하시므로
우리가 귀신이나 마귀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영성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의 침대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에 잠이 깼습니다.
그가 눈을 떠보니 커다란 마귀의 형상을 한 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는 크게 입을 벌리면서 하품을 했습니다.
"오, 너였구나."
그는 다시 잠을 청했고
바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는 마귀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잠이 들 수 있었을까요?
그의 영성은 이제 이런 사소한 일에
놀라지 않을 만큼 발전이 되었고,
그는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의 허락이 없이는
자기의 머리카락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좋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 희망적인 사고..
그러나 그것들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의 위안에 불과하며
주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참된 빛의 생각은 바로 주님 자신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빛으로 감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은 심리적인 것이며,
사람을 부추기는 것이므로
마귀는 그런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경배드리게 되면
마귀는 극심한 고통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 투시, 영적 세계를 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별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약간 도움이 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그 사람을 볼 때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이거나
그의 가슴속에서 악한 불길이
움직이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정도는
영이 열리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경험,
사람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는 아내가 워낙 센 마귀가 붙어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험상궂은 중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이 그녀의 믿음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나서
그에게 조언을 해줍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마귀가 붙어서 괴롭히는 면도 있지만
또한 고집에 세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중인지 뭔지 하는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형제는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입니다.
"정말 요? 어떤 비결?"
"그녀에게 붙은 마귀를 쫓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백화점에서 고객 감동 세일하듯이
아내 감동세일작전.."
실망한 형제는 곧 전화를 끊었습니다.
내가 장난을 치고 있는 줄 알았겠지요..
하지만 나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떤 신령한 비법이 있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악한 영들은
사납고, 거칠고, 전투적인 분위기에서는
잘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쫓겨나지만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사랑스러움, 부드러움, 따뜻함,
상대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있을 때
마귀는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몹시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를 갈면서
우리를 해하려고 달려와도
조용한 시선으로 부드럽게 응시해주면
그들 속의 악의 기운이 순식간에
꺾여 버리는 것입니다.
따뜻함, 사랑스러움..
그것은 영적 전쟁에서의
놀라운 힘입니다.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것이 보여도
그것을 무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
영원한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신실하지 않아도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니
항상 우리를 떠나시지 않고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에 대한 조용한 감사와 신뢰가
삶을 누리게 하며
신앙생활을 부드럽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글쓴이:옮겨온 글입니다.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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