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그 자체보다 주님을 더욱 갈망하는 삶

by 박원옥 posted Jun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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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이나 되는 관중을 바라보며 강단 위에 서있던 내게 불길한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나는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내게 영광스런 계시를 내려 주실 것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려주셨지만, 그와 함께 굴욕을 포함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나를 초대한 교파의 교회에서는 이틀에 걸쳐 강연해주기를 바랬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다른 하나는 치유하심에 관한 강연이었다.

그 교회 입장에서는 사실 무리가 따르는 결정이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교파도 아니었고, 하나님이 음성과 치유에 관한 설교는 물의를 일으킬 여지가 컸기

때문이다.

나는 든든한 예언자 친구와 동행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관한 메시지 전달은 매우 수월하게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실연할 순서가 되었다.

 

하나님이 음성에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음성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나는 아주 강한 감동을 받았고 첫번째로 입을 열었다.

꽉 차 있는 강당의 뒤쪽을 가르키며 '그 뒤쪽에서 오른편에 계신 분 중에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읍니다.

아니, 지금 이 시간 편두통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 강단 앞으로 나오신다면 주님께서

당신을 고쳐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마음은 자신 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주님의 계시와 주님이 그 사람을 고칠 것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나는 여유만만했다.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반복해서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자신감이 사라지면서 나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런 불쌍한 양반을 보았나,

가르치기는 쉬워도 시범을 보여주기는 힘든가보군"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구슬 땀방울을 흘리며, 무언의 비웃음을 받고 있으려니,내 정신이 아니었다.

 

예언자 친구 필 엘스틴이 내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는 두번째 줄에 나란히 앉은 다섯 남성들에게 물었다.

 

 '당신 다섯이 어떤 공통점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두 목사님들 이시군요. 그리고 이런 주제의 강연을 승인하지 않는 교파에 속해 계시군요'

 

그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이들 다섯 사람에게 필은 계속해서 예언의 메시지를 전했고, 이를 본 관중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의 계시를 듣는 동안 관중은 나의 실수에 대해 전부 잊은 듯 했다.

모임이 끝나고 앞으로 나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을 때, 20살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제가 본 중에 가장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앉아 있는 뒷 줄을 가리키시면서, ' 그 뒤에 계신 분 중 누군가가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계시는군요.

 지금 이 시간에도 말입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아까 뒤쪽을 손가락으로 지목하셨을 때,   바로 저를 향하고 있었어요!

저는 몇 년간 편두통으로 고생을 했고, 말씀하신 순간에도 편두통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지요.

도대체 어떻게 아신거죠?

 '잠깐만요, 제 손가락이 당신을 지목했는데 왜 앞으로 나오지 않은건가요'?

 '모르겠어요. 생전 이런 모임에 와보지 못했거나, 아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였겠지요, 그냥두려웠습니다'

 '편두통은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게 신기하단 말입니다. 모임이 끝나고 당신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곧 사라졌어요. 이제껏 편두통이

  그런 식으로 가라앉은 적이 없었답니다. 치유를 받은 것 같아요"

주님이 시키시는 훈련에 순응하기

편두통에 대해서 내가 맞았을지는 모르나,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두 번째 강연이 그 다음날 있었으므로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오해를 풀 수도 있었다.

과연 그래야 했을까? 그럼 오해를 풀기 위한 동기는 무엇이되는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인가?

아니면 내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인가?

하나님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함인가?

 

만약 나의 실패를 계획하신 분이 하나님이었다면?

만약 주님을 섬기는 나의 동기를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만약 주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위한 훈련을 하신것이라면?

 

만약 이러한 훈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게는 이러한 시험이 반복되어 내려질 것이다.

 

자신의 사역에 대한 동기를 정화하는데 공개적인 모욕만큼 좋은 약은 없다.

예언자적 사역을 하며 나 역시 수많은 창피를 당하는 경험을 했기에 잘 이해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어떤예언자나 기름부음 받은자라해도 창피를 당하는 훈련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이 시험을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마치 실패한 듯 느끼도록

허락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후13:7)

 

모든 예언자적 사역자들이 받아야 할 또 다른 훈련은 바로 '작은 일의 날(슥4:10)을 견뎌내는 것이다.

모든 예언자들이 사람들에게 가장 놀라운 비밀을 말하고 싶겠지만, 시작에는 항상 평범한 계시를 받게 된다.

 

아무도 처음부터 한 나라의 계시를 예언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초보자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한 평범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적시에 선포될 때 그 어떤 계시보다 강력할 것이다.

 

작은 시작을 얕보지 말기 바란다.

 

사역 그 자체보다 주님을 더욱 갈망하는 삶을 살 때, 당신의 미래는 번창할 것이다(욥8:5-7)



-  놀라운 예언의 은사(잭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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